우주까지 갔는데도 인간은 그대로였다.
인간은 새로운 행성에 가면 달라질 수 있을까.
조금 더 평화롭고,
조금 더 이성적이고,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왠지 아닐 것 같았다.
매트 존슨의 소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바로 그 질문을 아주 멀리까지 끌고 간다.
목성의 위성.
거대한 우주선.
인류 최고의 앨리트들.
그런데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처음 시작한 건
새로운 문명이 아니었다.
파벌싸움이었다.
MIT파와 칼텍파
우주까지 와서도 인간은
어떻게든 편을 가르고 있었다.
읽다가 조금 웃겼고,
조금 슬펐다.
멀리서 보면 유토피아인데 가까이 가면 이상한 도시
소설 속 핵심 공간인 '뉴로어노크'는 이상한 곳이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다.
시스템도 유지된다.
사람들도 적당히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질문이 없다.
모두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위협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아 침묵한다.
읽으면서 자꾸 현실 생각이 났다.
뉴스에서도,
회사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현실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질문을 멈춘다.
이 소설이 무서운 건 외계인 때문이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갈등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았던 건 이 생각이었다.
만약 인간이 새로운 행성에서 다시 시작해도,
결국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
누군가는 협력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만들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질문한다.
유토피아도 아니고,
완전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그냥 인간 세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복 덕분에 인간은 여기까지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또 somehow 같이 굴러가는 것.
이 소설은 그 혼란스러운 초기 상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웃긴데 서늘한 SF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커트 보니것과 조지 오웰의 감각이 섞인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읽다 보면
시트콤처럼 우스운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그런데 웃고 나면 조금 서늘하다.
우주 탐사선 안에서도 사람들은 줄을 세우고,
정치를 하고,
눈치를 보고,
침묵한다.
매트 존슨은 그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양극화와 집단 심리,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을 풍자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보이지 않는 존재’보다
그 존재를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결국 공포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커진다.
이 책은 결국 인간 관찰기 같았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SF인데,
읽고 나면 인간 관찰 에세이처럼 남는다.
아주 먼 우주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같다.
그래서 더 불편했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가도 인간이구나.
아마 그게
이 소설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