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샀다.
서점에 갈 때마다
몇 번씩 집었다 내려놨던 책이다.
이번엔 그냥 샀다.
집에 와서 책상 위에 올려뒀다.
뚱뚱하고 짧은 모양.
약간 거친 표지 질감.
손에 들어오는 무게까지 마음에 든다.
괜히 한 번 더 펼쳐본다.
몇 장 읽다가 다시 덮었다.
이상하게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은
끝까지 읽기가 싫다.
읽어버리면
내가 좋아하던 시간이 끝나버리는 느낌이 있어서.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게 많다.
아끼는 컵은 잘 안 쓰고,
좋아하는 스티커는 못 붙이고,
마음에 드는 노트는 첫 장을 쉽게 못 넘긴다.
책도 그렇다.
특히 오래 고민하다 산 책일수록 더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모으는 사람이 되어갈 때
책장에는 그런 책들이 꽤 있다.
분명 읽고 싶어서 샀는데
조금 읽다가 덮은 책들.
그리고 이상한 건
안 읽으면 생각보다 빨리 잊힌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왜 샀는지도 흐릿해진다.
책은 읽지 않으면
조금씩 풍경이 된다.
가끔 책장을 보다 보면
내가 책을 읽는 사람인지
모으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또 서점에 간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한참 들고 다니다 결국 계산대로 간다.
그리고 집에 와서
몇 장 읽다가 다시 덮는다.
왜 사람은 좋아하는 걸 아껴두기만 할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책 내용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읽지 않은 가능성을 좋아하는 걸까.
읽기 전의 기대감.
언젠가 천천히 읽게 될 거라는 기분.
어쩌면 그 시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그 책을 괜히 다시 펼쳐봤다가,
몇 장 읽고 또 덮었다.
Tags:
문장수집
